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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랑 같이 다니기 싫다는 초5 딸 |
우리 딸은 어렸을 때부터 자립심이 강한 아이였습니다. 옷을 입기 시작할 무렵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옷은 직접 골라 입어야 했고, 제가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하면 먼저 손부터 내저었습니다.
"엄마, 제가 할 거예요."
뭐든 엄마가 해주는 것보다 자기가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인데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직접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렇게 자립심 강한 딸이 엄마인 저를 꽤 서운하게 할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딸이 장을 보러 따라왔습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고 장을 보러 나갈 참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딸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장 보러 가는데 같이 갈래?"
평소 같으면 분명 안 간다고 했을 아이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같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집 앞을 나서면서부터 수다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엄마인 저를 이해하는 부분도 많아졌고, 유머와 장난기도 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딸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꽤 재미있어졌습니다. 엄마와 딸이라기보다 가끔은 편한 친구와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날도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며 한참 웃었습니다.
마트에서 고기도 사고 야채도 사고, 필요한 것을 이것저것 담다 보니 장바구니가 금세 무거워졌습니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딸이 옆에서 장바구니 하나를 들어주었습니다.
"오늘 너 같이 안 왔으면 엄마 혼자 이거 들고 가느라 힘들 뻔했어. 같이 와줘서 고마워."
그렇게 이야기하며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여자아이 한 명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갑자기 딸의 표정이 굳었습니다.
"엄마, 쟤 우리 반 애 같은데요."
"아이 참... 하필 여기서 마주칠 게 뭐야."
저는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왜? 저 친구랑 사이 안 좋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딸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괜히 엄마 따라 나왔어요"
친구가 가까이 오자 저는 그냥 가볍게 인사했습니다.
"안녕."
딸과 키도 비슷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였습니다. 정말 짧게 인사하고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멀어지자 딸이 말했습니다.
"괜히 엄마 따라 나왔어요. 이래서 내가 동네에서는 엄마랑 같이 다니기 싫었던 거예요."
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뭐라고? 엄마랑 같이 다니기 싫다고?'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습니다.
"엄마랑 같이 다니는 게 창피하니?"
딸은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네."
세상에나. 예전에 드라마에서나 보던 '부모를 창피해하는 아이'가 우리 집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서운했고, 기분도 금세 우울해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며 웃던 딸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딸에게서 무슨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인지,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엄마가 부끄러워? 엄마가 집에 있는 차림으로 나와서 그래?"
그러자 딸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엄마, 그런 말이 아니에요. 엄마랑 같이 다니는 거 보면 애들이 나를 마마걸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아... 그런 말이었어?"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입가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딸이 창피했던 건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엄마랑 같이 장도 보고 짐도 들어주는데, 오히려 친구가 너 착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딸의 생각은 단호했습니다.
"아니에요. 엄마, 이제 엄마랑 같이 안 나올래요."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엄마, 학교에 오면 큰 소리로 나한테 인사하지 좀 마요. 막 사랑한다고 그런 말도 하지 마요. 얼마나 창피한지 몰라요."
"엄만 좀 과해요. 다른 친구 엄마가 그래도 내가 다 창피해요."
그 말을 듣고서야 딸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제가 엄마라서 창피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유난히 엄마와 가까워 보이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마마걸'처럼 보일까 봐 신경이 쓰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초5 딸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많이 커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의 말을 계속 생각했습니다. 아직 초등학생이니까 학교에서 엄마를 만나면 반가워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우리 딸 사랑해."라고 말하면 속으로는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제 생각이었습니다. 딸은 이미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이런 게 궁금해서 나중에 아동기 후반과 청소년기 발달에 관한 자료를 따로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부모가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뿐 아니라,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도 점점 민감해진다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자아정체성, 그러니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스스로 찾아가고 만들어 가는 과정이 이 무렵부터 조금씩 뚜렷해지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 친구관계는 단순히 같이 노는 사이를 넘어 조금씩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친구들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부모 앞에서의 모습과는 또 다른 자기만의 모습을 만들어 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아이도 친구들 앞에서 부모가 어린아이 대하듯 하거나 애정 표현을 크게 하면 갑자기 민망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서운하기 마련입니다. '어릴 때는 엄마만 찾더니 이제 엄마가 창피한 건가?' 저도 바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부모를 싫어해서라기보다 '나는 이제 엄마에게 의존하는 어린아이가 아니야'라는 마음을 또래 앞에서 지키고 싶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딸은 원래 이런 아이였습니다
그제야 딸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옷도 자기가 골라야 했고, 뭐든 혼자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도와주려고 하면 "내가 할 거예요."라며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직접 재료를 사고 만들어 먹습니다. 그 자립심이 이제 생활을 넘어 관계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이의 독립이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혼자 옷을 고르는 일, 부모의 도움을 거절하는 일, 친구 앞에서 엄마의 과한 애정 표현을 민망해하는 일처럼 아주 사소한 모습에서 조금씩 나타나는 것이니까요. 딸은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할 거예요."라고 말하던 아이가 이제는 관계에서도 자신의 경계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딸이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딸은 자기 방식대로 계속 자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를 조금 더 큰 사람으로 바라봐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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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는 그날 딸의 진심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엄마가 창피해?"라는 제 서운함에만 머물렀다면 아이의 마음을 오해했을지도 모릅니다. 딸이 원한 것은 엄마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조금 컸다는 사실을 엄마도 알아봐 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제 학교에서 딸을 만나면 조금 조용히 인사해 보려고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도 친구들이 없는 곳에서 해야겠습니다. 물론 집에서는 계속 할 생각입니다. 그것까지 딸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하하.
아이의 행동만 보면 "엄마를 창피해하네."라고 서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어쩌면 "엄마, 나 이제 조금 컸어요."라는 마음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제 딸을 어린아이로만 바라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엄마에게서 조금씩 멀어지는 아이를 붙잡기보다, 필요할 때 언제든 편하게 돌아올 수 있는 엄마로 남아 있고 싶습니다. 아이의 독립은 부모를 떠나는 일이 아니라, 자기만의 세상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는 과정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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